[책 소개]
 
슬픔 한 방울, 그리고 희망차고 따뜻한 ‘로맨틱 코미디’이기를.
 
대학로 및 전국에서 꾸준히 공연하며 좋은 평가를 받는 연극 「복길잡화점」.
연극에서 미처 못다 한 이야기를 여기 담았다.
 
깊은 사랑을 가졌지만 무뚝뚝한 경석은 그런 태도 때문에 아들 복길과 사이가 좋지 않다.
시장통 밑바닥 좌판 인생부터 시작해 어느덧 동네에서 커다란 마트까지 지은 경석이었으나, 아들 복길은 마트를 팔 생각만 가득하니 사이가 좋을리 없었다.
그날도 복길과 한바탕 한 경석은 씩씩거리며 집에 돌아가 밥투정을 부리다 아내 연화에게 한소리를 듣고 투덜거리며 된장국을 한입 뜨는데 된장국에 있어선 안 되는 것이 보인다.
 
“된장국에서 리모컨이 나왔어!”
 복길과 마트 최고참 직원이 민정을 부른 경석은 연화의 치매를 받아들이지 못하는데,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젊은 시절로 돌아간 듯한 연화의 모습에 오늘 며칠인지 물어보는 경석.
“1978년 8월 8일! 오늘 내 생일이잖아요!”
정신이 번뜩 든 경석은 주변 사람들을 모두 불러모아 선언한다. 
1978년까지 밀린 연화의 기억을 현재까지 쭉 밀어붙이자고. 아직 마트가 되기 전 ‘복길잡화점’을 부활시켜 연화의 기억을 되찾겠다고. 
 
연화의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주기 위해 과거로 돌아가는 콩가루 가족의 ‘로맨틱 코미디’.
지금 시작합니다. 
 
 
 
[출판사 서평]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은 웃기를.”
 
『복길잡화점』은 단순히 슬픔을 위함도, 독자를 감동시키기 위함도 아닌 우리들 인생이 항상 희극이기를 바라는 작품이다. 우리에게 벌어지는 고난과 슬픔은 그 뒤 행복을 강조하기 위한 소금 한 줌이기를 바라며 이민혁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우리의 인생 장르가 ‘로맨틱 코미디’라는 것을 잊지 말아 달라고 강조한다.
그렇기에 이 작품은 슬픔이 있어도 슬픔에 매몰되지 않고, 그렇다고 슬픔을 도구 삼아 누군가를 가르치려고 들지도 않는다. 
 
그러니 이 작품을 무겁게 읽을 필요도 없고 억지로 슬퍼하려고 할 필요도 없다. 그저 콩가루 같은 복길이네 가족이 우리를 어떻게 웃게 만드는지 지켜봐 주시라. 『복길잡화점』의 장르는 ‘로맨틱 코미디’니까.
[본문 자세히 보기]
 
두 번째 사업이 망한 후 방황하던 복길은 어느 날 느닷없이 아버지가 운영하는 마트를 물려 달라 떼를 썼다. 그동안 관심도 없었던 마트 일에 갑자기 뛰어든다고 하니 터무니없다 생각한 아버지는 들은 체도 하지 않았지만, 자식 이기는 부모 없듯 결국 한평생 키운 가게를 아들 손에 넘겨주었고 반 어거지로 뜻을 이룬 복길은 세습경영의 성공사례를 자신하며 눈물까지 보였건만 포부와는 달리 시작부터 삐그덕댔다. 마트 직원과의 첫 상견례 날, 이까짓 가게 사고파는 단순한 사업 아니냐며 아빠보다 더 크고 대차게 키울 거란 출사표를 던져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았건만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장 보러 온 아줌마들과 배추를 휘두르며 싸움을 벌였다. 
어느 날엔 지게차 운전을 배우겠다며 설치다 간이창고를 넘어뜨려 수백만 원어치의 재고물품을 폐기처분해야 했고, 본인의 계산 실수로 장부에 펑크가 난 걸 애꿎은 직원에게 횡령으로 뒤집어씌우려다 왕사장에게 걸려 눈물 쏙 빠지게 혼이 났었다. 그렇게 밉상과 진상을 너머 최대 빌런으로 발전하는 데까지 고작 1년. 복길의 입장에서도 뭐 하나 되는 게 없는지 그새 마트 운영에 마음이 떴고 2년 차부터는 못난 짓만 골라서 했다.
-본문 '2023년 8월 8일 복길마트' 중에서
 
 
목이 타는 듯 생수 한 병을 집어 끝까지 비우는 경석을 보자 민정은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질 듯하여 서늘한 땀이 흘렀다. 아무 생각 없는 복길은 하품을 하며 졸린 눈을 비빌 뿐이다. 
“왕사장님 혹시 무슨 일 생긴 건 아니죠?” 
“뭔 일이 나도 단단히 났지. 다들 모여 봐, 김 주임은 칠판 좀 가져오고! 얼른!” 
심각한 결정이 있을 때마다 나오는 경석 특유의 묵직한 탁성을 듣자마자 눈치 빠른 민정은 조교처럼 칠판을 끌고 나와 경석 앞에 대령하고, 소리는 복길 옆에 쭈그리고 앉아 심심한데 잘됐단 표정으로 귀를 쫑긋 세운다. 경석은 칠판에 붙어있던 영수증과 거래명세서들을 거칠게 떼어낸 뒤 검정 펜으로 커다란 U자 모양의 한국지도를 그린 다음, 서울 즈음에 별표를 치고 부산 즈음에 별표를 친 뒤 말했다. 
“여기….” 
“정답! 나 알아! 서울! 코뤼아!” 
“그럼 요 아래에 있는 요거는?” 
“정답! 나 알아! 부싼!” 
“그렇지! 여기 서울이 복길마트라고 치자고. 그러니까….” 
경석이 서울에 그려놓은 별표 옆으로 ‘복길마트2023’이라 적는 걸 보며 복길의 표정은 급격히 어두워진다. 
“니 엄마 기억이 서울에서 부산까지 밀려 내려왔다 이 말이야.” 
경석은 부산 지점에 그려놓은 별표 옆으로 ‘복길잡화점1978’이라 적고 화살표를 그어 밀려났음을 표시한다. 
“지금 니 엄마 기억이! 2023년도 복길마트에서 1978년도 복길잡화점까지 쭈욱 밀려났다고!” 
“우씨! 그럼 서울까지 치고 올라가야지!” 
소리가 벌떡 일어나 주먹을 불끈 쥐자 경석이 제대로 짚었다는 듯 소리를 가리킨다. 
“바로 그거야! 이 낙동강 방어선에서 기억이 밀려 버리면 그대로 끝이야!”
-본문 '2023년 8월 8일 복길잡화점' 중에서
 
 
어느새 도착한 서커스장 앞, 어떻게 꾸며놨나 내심 조마조마했던 경석은 만국기가 펄럭이는 주차장을 보자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이윽고 입구를 바라보자 건물을 뒤덮은 오색찬란한 천들과 노상 주차장엔 곰 분장을 한 덕배의 어설픈 저글링이, 옆으로는 머리에 검은 띠를 두른 창남, 종구 콤비의 백덤블링 퍼포먼스가 연화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는다. 
“우와, 저 사람 좀 봐요! 어쩜 사람이 저렇게 날렵하지?” 
제법 서커스장의 풍모를 보이는 이곳. 지나가던 사람들도 휴대폰을 들어 사진을 찍으면서 갑작스럽게 세워진 서커스장에 관심을 가진다. 눈치가 빠른 편인 연화 또한 걱정과는 달리 의심은커녕 감탄하느라 정신이 없고 때마침 노란색 정장에 삐에로 분장을 한 복길이 찰리 채플린처럼 걸으며 다가오자 경석은 질금질금 웃음이 터지려는 듯 목젖이 바르르 떨린다. 
“신사 숙녀 여러분 혹시 서커스 구경 안 하시렵니까.” 
빨간 입술이 커다랗게 그려진 복길 삐에로가 다가오자 연화는 무서운지 뒤로 물러선다. 경석은 티켓을 사는 척 복길을 데리고 몇 걸음 멀어진 다음 속삭인다. 
“보아하니 생각했던 것보다 훌륭하네!” 
“엄마가 어렸을 때부터 주구장창 들려준 서커스 내용 그대로 준비했으니 이거 보시고도 기억 못 찾으면 내 손에 장을 지집니다, 장을 지져요.” 
“그럼 너 설마 코끼리도 데려온 거냐?” 
“에이 그런 건 그냥 이미테이션으로 가야지 진짜 코끼리를 어떻게 데려와요.” 
“대충 흉내 냈다가 들키면 말짱 도루묵이야 알지?” 
“희한하긴 해도 나름 맛은 냈으니 걱정하지 마십쇼! 내 참 아빠 덕에 별거 다 해보네.”
 비장한 얼굴로 다시 찰리 채플린처럼 걸어가는 복길을 보며 경석은 저 녀석이 잘하는 것도 있네 싶으면서도 한편으론 애비 잘못 만나 고생이다 싶다.
-본문 '2023년 8월 9일 복길서커스' 중에서
 
 
 
[차례]
 
- 1970년 8월 8일 경석 이야기
2023년 8월 8일 복길마트
2023년 8월 8일 복길잡화점
2023년 8월 9일 복길잡화점의 기적
2019년 8월 8일 소리 이야기
2023년 8월 9일 복길서커스
2023년 8월 9일 복길잡화점 VS 복길마트
2020년 8월 8일 민정 이야기
2023년 8월 10일 당신만이
에필로그
작가의 말
추천사
연극 「복길잡화점」 출연 배우들의 이야기
 
 
 
[작가 소개]
 
글 이민혁
 
1986년 봄에 태어났다.
스물넷 무작정 글을 쓰기 시작했고, 연극과 뮤지컬에 빠져 무대가 있는 곳이라면 전국 팔도를 가리지 않고 다녔다.
 
연극 ‘벙어리장갑’, ‘이프온리’, ‘러브액츄얼리 첫 번째 사연’ 외 대략 일흔 편이 넘는 연극과 뮤지컬을 집필, 각복, 각색, 연출했다.
 
소극장 연극이 웹툰만큼 흥하길 바라며, 오늘도 백지 위에 숱한 이야기를 썼다 지운다.